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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인공존재

전리해×한석경
 

전시 기간: 22. 12. 14 – 23. 01. 04

초대 일시: 없음


공-원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4길 9-3

12 - 6 pm(월요일 휴관)

기획: 문명기

주관: 공-원
후원: 문워크

​디자인: 바나나시체전문처리반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아직 진행 중으로 이미 수만 명의 사상자가 생겼고 오늘도 피해는 늘고 있다. 그러나 최신 뉴스와 가십에 밀려 문제의식은 발현되지 않는다. 엄연한 휴전국인 한국은 SNS 뉴스피드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업데이트 되는 나라다. 그런 만큼 전쟁 정보가 과잉 공급되어 우리는 전쟁을 좀처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짤과 밈, 알고리즘 시대에 전쟁의 고통은, 나아가 소외된 개인의 고통은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그리고 늘 새로운 이슈를 경쟁하듯 쏟아내는 한국의 미술계에서 아젠다 키핑(agenda keeping)은 가능한 일일까.

  전쟁이 주제인 전시를 통해서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미술의 시대정신? 시사적 문제? 거대하고 무거운 역사적 사실들? 아니면 미학적 유희? 관습의 타개? 그것도 아니면 시각적 유희? 어느 것 하나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분명 말할 수 있는 게 있는데 그게 뭘까. 확실한 건 유령 같은 정보들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한석경은 휴전선 인근에 흩어진 개인의 역사를 수집해 왔고, 전리해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경산의 광산 이야기를 좇아 왔다. 두 작가는 거대한 역사 속에 미미하게 남아 있는 개인들의 소회, 토해 내지 못한 울분, 아직 보듬어 주지 못한 통한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 전시는 잊혀진 전쟁에 대한 것도, 정보화되지 못하고 묻힌 개인의 소외에 대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실재하는 이유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빅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 인터넷, 무인 운송 수단(무인 항공기, 무인 자동차), 3차원 인쇄, 나노 기술. 우리에게 도래한 4차 혁명 속에 과연 우리는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실을 기억하고 어떤 의미를 나눠야 하는가.

  두 작가는 70년이 넘은 한국전쟁의 잔재, 전쟁에 투영된 자신 그리고 당신의 모습을 시각화한다. 그것은 여전히 진행 중인 아픔들에 대한 위로, 개인이 또 다른 개인에게 보내는 인사, 또는 지금을 사는 어떤 인공의 존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두 작가의 지속적인 성실함이 몇몇의 당신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외롭고 공허하지만 의미가 담긴 몸짓에서 인간애를 느끼길 바란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전시가 이 시대 아젠다 키핑의 마지노선으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존버하시길.

​글/문명기

​전리해

공작의 세계, 전리해, Digital pigment print, Variable Size, 2021

신문기자 C의 진실 규명 작업 일지, 전리해, Digital pigment print, Variable Size, 2021

장소의 존재 방식이나 작동 방식은 역사적으로 변화한다.

경산 코발트 광산은 상실과 박탈, 폭력의 상처가 잔존하는 대표적인 역사적 장소이다.

*코발트 광산


  경산 코발트 광산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후반 일제에 의해 개발된 군사용 광산이다. 1942년 폐광될 때까지 태평양전쟁 등에 쓰이는 군사용 코발트를 공급했다. 광산은 2차대전 종전 직전 폐광된 후 방치되어 있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규모 민간인 학살 적지로 지목되었고, 1950년 7월 20부터 9월20일까지 대구형무소 재소자와 경산, 청도의 국민보도연맹 회원 약 3,500여 명이 광산에서 군·경에 의해 학살되었다. 연맹원들이 인민군에 가담하거나 기타 부역 행위를 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국민보도연맹이란 1949년 좌익 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조직된 반공단체로, 대부분 좌익사상이나 반국가 활동과는 무관한 단순 가담자, 부역자, 동조자였으며 직업도 농민이 가장 많았다.


  코발트 광산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 은폐되어 왔고 구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래로 연결되지 못하고 과거에 멈춰 있었던 이곳은 현재 개인과 지역공동체의 노력으로 예술 작품, 구술 자료 등으로 기록되어 장소에 대한 기억과 새로운 의미를 남기고 있다. 나는 2021년 경산 코발트 광산을 방문하여 입구의 위령탑에 참배하고 수평 2굴의 폐광 내부를 직접 확인했다. 현재의 광산에서 과거의 학살까지 수십 년을 한순간에 넘나드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공작의 세계


  '공작의 세계'는 이동하의 소설 〈우울한 귀향〉에서 가져온 것이다. 두 가정의 파멸로 인해 침묵하며 지내야 했던 작중 인물은 자신의 심리가 투영된 '공작의 세계'를 만들어 바라본다. 현실의 삼성역, 학교, 폐광, 마을 등은 공작의 세계에 고스란히 옮겨진다.


  나는 소설에 등장하는 삼성역 플랫폼, 학교 교문, 깊은 산골짜기의 폐광을 직접 찾아가 잔존하는 대상들을 기록하고자 하였다. 작중 인물들의 불안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옛 모습과는 많이 변해 버린 골목, 교정, 마을을 숱한 경험이 묻어 있는 나의 눈으로 보고자 하였다. 

*신문기자 C의 진실 규명 작업 일지


  경산신문 기자이자 피해자 유족이기도 한 최승호는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연대기적 기록을 현재도 이어가고 있다. 1950년도부터 시작된 유족들의 진실 규명 활동은 일지로 기록되어 수십 장에 이르는 아카이브 자료로 남아있다.


  나는 해당 자료를 전달받고 사건 이후 묻힌 역사에 대한 시각적 연대기를 만들기로 했다. 먼저 코발트 광산 주변에 핀 여러 들풀을 채집하고 포토그램 방식으로 실루엣만 남겼다. 그 이미지 위에 연대기적 기록 텍스트를 겹쳐 시간적 층위를 만들었다. 어쩌면 자연으로 스며들었을지도 모르는 영혼들의 잔해를 폐광 주변부에 핀 들풀에서 찾아, 은폐되고 감춰져 있었던 사실과 함께 인화지 위에 정착시키고 싶었다.

​글/전리해

한석경

명파 Shiny wave, 한석경, 철조망, 고가구, HD Video_2' 57", 700×670×370㎜, 2022 

점점 느리게 Morendo, 수집물, 고가구, HD Video_17' 06", 700×370×1090㎜, 2022 

시간, 지역, 공간, 세대, 마음의 경계에서 서성인다. 

 

note 1.

6.25 전쟁 속에서 일어난 참혹한 역사의 상징물들은 남아있는데 희생자와 가해자 모두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끝나지 않는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는 한이 서린 공간만이 남아있다. 역사는 끝나지 않은 채로 진행되고 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 나아가는 길에는, 소외되고 잊혀진 이들에 대한 기억이 필요하다.

note 2.

2022년에는 전쟁의 역사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스러져간, 사라진 존재들에 대한 기록에 관심을 갖고, 사적인 아카이브에 대한 연구 및 조사를 바탕으로 주류 역사에서 배제된 소수자의 서사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모든 역사는 고통과 욕망, 그리고 죽음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슬픔이 있다. 분명 드러나지 않은 입혀진 목소리, 미약하지만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note 3.

책장 안에 차곡차곡 슬픔의 형상, 낡은 나무 한 조각, 손으로 더듬어낸 기억의 기록, 눈물 한 방울, 뽀얗게 쌓여있는 먼지가 있다. 차곡차곡 채워져있는 물질들 사이의 공기들에는 여러 감정의 내음들이 떠돈다. 손으로 아무리 더듬어봐도 닿을 수 없는, 차마 읽어내기도 어려운 시간이 곳곳에 묻혀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연민들이 빼곡하게 박제되어 있다. 이미 소멸되어 무형의 존재가 되었어야 하는 것들이 유형으로 남아있다. 과거의 사건을 그대로 시각화 하는 것에 있어서, 일반적인 사실주의 재현 방식에서 벗어난 대안적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사건 속 실제의 것들 혹은 당사자들이 직접적으로 작업 속에 등장할 수 있고, 상징성을 갖고 있는 상황으로 보다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 사건만의 감각을 찾아 새로운 언어로 만드는 방식이 있겠다.

​글/한석경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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