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커피의 시간

박화영, 백정기, 이창원
 

전시 기간: 2022. 7. 22 – 9. 25

초대 일시: 없음


문화비축기지 T5

서울 마포구 증산로 87

화-일 10am - 6pm

(월요일 휴무)

기획: 공-원

그래픽디자인: 고와서, 바나나시체전문처리반

공간디자인 및 설치: 무진동사, 문워크
 

주최·주관: 문화비축기지, 한국국제교류재단 아세안문화원
후원 : 서울시, 외교부

협력 : 주한 아세안 대사관

‘티타임’은 ‘차를 마시는 시간’을 일컫는 말로 일찍이 영국에서 유래했다. 티타임은 산업화 시대에 노동자들의 쉬는 시간을 보장하는 규정으로 자리 잡아 전쟁터에서도 지켜질 정도로 일반화된 관습이 되었다. 차와 커피를 마시며 휴식하는 시간은 서구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보편화된 문화이다. 아세안 지역에서는 손님을 맞이할 때 차를 대접하는 오랜 풍습이 존재한다. 이러한 차 문화는 인접한 인도,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타문화와 활발히 교류하면서 더욱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해왔다.

  이 전시는 분주한 일과를 잠시 멈추는 휴식, 또는 손님을 환대하는 풍습으로서 차와 커피가 지니는 다양한 문화적 의미를 조명하고, 글로벌 팬데믹 상황에 놓인 우리의 일상을 ‘멈춤’의 시간으로 재해석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멈춤’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비대면 모임, 재택근무, 자가격리 등 그 어느 때보다 자주 회자되는 이와 같은 일상의 지침들은 분주한 현대인들의 일상에 ‘멈춤’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리퀴드 써큘러스 잔 - 브레이크 탱크, 박화영

6개의 280×280㎝ 원단 스크린에 6 채널 비디오(각 10분 루프),
360도 원형 벽면에 12 채널 비디오(각 5분 루프),
서라운드 사운드 설치

2022

박화영

리퀴드 써큘러스 잔 - 브레이크 탱크

1970년대에 석유비축 탱크로 기능했었던, 현재는 그 속이 텅 빈 원형 금속 건축물 내부 벽면에 360도 영상을 투영하여, 마치 건물만 한 거대한 컵 내부에 커피를 드리핑해서 잔을 채우는 듯이 영상 공간을 연출한다. 이는 만물을 생장시키고 순환하는 우주적 에너지의 표상으로, 자연의 새싹을 틔우고 열매를 영글게 하고, 행성들이 도는 궤도와 속도를 상호 관장하며, 매 찰나 소멸하고 새롭게 탄생하는 생생한 현재 순간처럼 영원히 마르지 않는 화수분 단지와 같다. 석유 연료 대신 인간이 섭취하는 커피 액을, 비유적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며 샘솟는 에너지 연료’에 빗대어, 커다란 탱크를 채운다. 탱크 내부의 여섯 개 파이프 기둥 사이마다 스크린 원단을 설치하고, 여기에 여섯 개의 양면 비디오 프로젝션으로 마시고 난 커피잔 밑바닥에 남은 찌꺼기가 그려 내는 수많은 둥근 자국을 차례차례 빠른 페이스로 상영한다. 각종 컵, 그릇 등의 식기들이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와 액체가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진다. 탱크 중앙에서 리드미컬하게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爆笑)는 미국 노예 출신으로 최초의 음반을 녹음한 흑인 가수 죠지 존슨이 1890년대에 부른 ‘The Laughing Song’의 초연하고 유쾌한 육성이다. 작품 제목의 ’브레이크’는 이 단어가 함유하는 ‘멈춤’ 또는 ‘휴식’의 의미를 넘어, 학습된 루틴과 고정관념을 부수고, 나아가 스스로를 깨고 각성하여 새로 태어나는 원초적 생명의 원동력을 암시한다. 손바닥보다 작은 찻잔의 원형 얼룩들이 확대 투영된 공간을 유영하는 관객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안 맨’의 인간을 대체하며, 모든 개체가 온전한 소우주로 작동한다.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의 커피 얼룩들은 순간순간마다 대체 불가능한 새로운 찰나의 고유성을 부여하며, 동시에 바로 흔적 없이 사라짐으로써 늘 현재의 살아 있는 생동감을 반증한다.

ISOF-220220, 백정기
식물색소(녹차잎, 고추, 울금)
잉크젯 프린트, 에폭시 레진, 목재, 스테인리스 스틸, 혼합재료
138×180×60㎝ (스탠드 포함)
2022

백정기

Is-of

작가는 수년 전 아시아의 차 재배지에 체류하면서 찻잎에서 추출한 색소를 이용해 풍경 사진을 프린트하기 시작했다. 이후 식물의 꽃, 줄기, 뿌리 등에서 얻어낸 색소들로 사진을 프린트했는데, 여기 사용된 천연 색소들은 공기와 만나면서 점차 산화하기 때문에 이미지는 점차 변색되고 흐려지고 만다. 변화와 소멸이라는 자연의 법칙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반면, 전시된 단풍 풍경 사진은 질소를 이용해 산화작용을 강제로 멈추도록 제작되었다. 이처럼 “Is-of” 시리즈는 오늘날 모두가 경험하는 ‘멈춤’의 현상을 환기한다. 자연의 일원으로 우리 인간에게 요구되는 ‘멈춤’의 행위는 과학적인 기술을 동원해 변색을 막으려는 작가의 노력으로 비유된다. 시간이 흘러 풍경 사진들은 결국 흐려지게 된다. 자연의 순환 질서에 저항하기에 인간의 ‘멈춤’의 시도는 미약할 따름이다. 이처럼 “Is-of” 시리즈는 오늘날 모두가 경험하는 ‘멈춤’에 대한 사유의 단초를 제공한다.

찻잎산수, 이창원
찻잎, 가변설치
2022

이창원

찻잎산수

단단한 재료를 사용하는 전통적인 조각을 전공한 작가에게 찻잎이라는 재료는 일종의 반항이자 탈출구였다. 독일 유학 시절, 아시아 식료품점에서 발견한 스리랑카산 홍차잎을 작업실에 가져가 몸의 실루엣 안에 채워 넣었던 것이 일련의 찻잎 작업의 시작이었다. 찻잎은 여러모로 매력적인 재료이다. 바닥에 뿌렸을 때 그어지는 자잘한 선들은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노이즈를 자아내며, 일견 마른 낙엽처럼 보이기도 하는 찻잎은 전통적인 조각에서 사용하는 단단한 재료와는 다르게 바람에 쉽게 흩어져 버린다. 긴 시간이 응축되어 있는 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내어 마신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그에 더해 동서양 사람 각각이 지닌 차에 얽힌 경험이며 느낌, 차의 역사까지 고려하면 찻잎이 함축하는 의미는 더욱 풍부해진다.
 

  찻잎 드로잉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외부 활동이 줄어들고 작업실에만 머물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바인더를 섞은 찻잎을 물감처럼 이리저리 휘두르자 흥미롭게도 동양화의 산수를 연상시키는 산이나 나무 같은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찻잎산수”는 일종의 고정되지 않은 산수화로, 문화비축기지 T5의 기다란 부채꼴 모양의 쇼케이스를 활용하게 되면서 현장에서 직접 찻잎 가루를 뿌려 라이브 드로잉한 것이다. 한국 전통 미술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산수화의 요소를 참조하고 이어 붙여 하나의 기다란 풍경으로 만들었는데, 벽에 걸린 다양한 찻잎 드로잉들에서 엿보이는 조형적 요소의 종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시 기간에만 볼 수 있는 한시적인 작품 특유의 긴장감이 묻어난다.